• 1위. 박경옥 수산나
    4648점
  • 2위. 최서림 자네트
    3454점
  • 3위. KENOSIS
    2770점
  • 4위. 노엘²
    2736점
  • 5위. 고광원
    1604점
  • 6위. 피터임
    1572점
  • 7위. 윤경화요셉
    1456점
  • 8위. 하크
    1374점
  • 9위. 서인덕 가브리엘
    1332점
  • 10위. 양준명(마태오)
    1274점
  • 11위. 류제성 F.하비에르
    1180점
  • 12위. 송현주 안나
    808점
  • 13위. 에밀리아나
    788점
  • 14위. 김선중세실리아
    764점
  • 15위. 붉은호빵(용토)
    744점
  • 16위. 가니시오
    686점
  • 17위. 수원 안나
    676점
  • 18위. 윤지현 글라라
    492점
  • 19위. 소피아
    482점
  • 20위. 윤다운
    37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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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는 누구인가...

가톨릭의 성인들 중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만큼 널리 알려진 성인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또 쓰여진 책이 그토록 많은 성인도 드물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왜 이렇게 유명할까요?
종파를 초월하여, 개신교는 물론 종교를 모르는 이들까지도 성인의 삶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니,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과연 시대를 초월한 성 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여기 성인의 삶과 정신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tcross_s.gif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

프란치스코는 12세기 말 이탈리아 소도시 아씨시(Assisi)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느님을 만나는 회개 체험을 통하여 회개 운동에 전적으로 투신하게 되었다. 그의 회개 생활을 함께 하려고 형제들이 모여들었을 때, 그는 곧 교황청의 인가를 요청하여, 1210년에 생활 양식에 대해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구두 인준을 받았다. 점점 형제들의 수효가 증가함에 따라 프란치스꼬는 자신이 형제들의 유일한 생활 규범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인준받지 못한 두 개의 회칙에 이어 최종적으로 회칙을 작성하여, 1223년 교황 호노리오 3세로부터 인준을 받았다.

프란치스코는 처음부터 선교 소명을 가졌다. 그는 복음의 파견 말씀을 자신과 형제들에게 주신 것같이 받아들여 초기부터 두루 다녔고, 이 평화의 메시지를 이탈리아에만 전파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전세계를 여행해야 한다는 강한 선교 소명을 느꼈다. 프란치스꼬는 회개 생활 6년째인 1212년 사라센들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시리아로 가려 했으나 실패했고, 두 번째의 모로코 선교 여행을 시도하였으나 스페인에서 열병에 걸려 포기해야 했다. 1217년 뽀르찌운꿀라에서 성령 강림 축일에 총회가 열렸는데 총회의 결정 사항들 중 하나는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는 회교도들에게 복음을 설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형제들의 수효가 불어나 3,000여 명이 참석한 1219년 돗자리 총회에서 새로운 선교단의 파견 결정을 하였고, 프란치스꼬 스스로 회교도의 술탄을 만나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평화를 전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선교 여행과 1220년 모로코 마라께스에서의 베라르도와 동료들의 순교 소식의 결과로써 1221년 회칙 안에 수도회 회칙으로는 최초로 사라센인들과 다른 비신자들 가운데 가는 형제들?에 대한 내용을 등장시켰다.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들은 시초부터 모든 이들에게로 향하였다. 이들은 마호멧교도들이 있었던 아프리카와 시리아, 다양한 부류의 신앙을 지니고 있던 소아시아와 동유럽, 유럽의 그리스도교화를 보충하기 위한 발트 해안, 아시아의 몽고 등지까지 선교 활동을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성당에서 기도하던 중에 "프란치스코야,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하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실제로 성당을 수리하였고, 이후 교회 재건에 힘쓰면서 기도와 보속의 삶에 헌신하게된다.

1209년 프란치스코는 자기를 따르는 동료들의 생활이 교회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쓴 간단한 회칙을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구두로 인준받게 되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평신도들을 위해 후에 "3회"라고 불리는 재속프란치스코회를 만들었으며, 그들에게 적합한 생활양식을 주어 실천하게 했다.

1212년 프란치스코는 자기를 따르려는 여성들을 위해 "제2호", 즉 가난한 부인들의 회. 혹은 가난한 글라라회를 만들었다. 그의 기도생활과 선교활동은 풍성한 열매를 맺어 많은 사람들이 감화되었고, 특히 모든 자연과의 교감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성인의 놀라운 보편적 형제애를 보여주고 있다.(태양의 노래)

1224년 라 베르나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던 중 성 십자가 현양축일에 하느님은 성인의 몸에 십자가 상에서 받은 예수님의 오상을 박아 주셨다. 이는 프란치스코가 주님을 정말 닮아갔음을 보여주는 주님께로부터의 응답이었고, 이로써 그를 '제2의 그리스도'라 부르기도 한다.

1226년 10월 3일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으며, 1228년 7월 15일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성인반열에 올림을 받았다. tcross_green.gif

 

 

※ 출처 :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국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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